나는 전기차가 처음은 아니다.
2023년에 아이오닉6 AWD를 신차로 구매한 적이 있다.
그때도 당연히 오래 탈 생각으로 샀다.
근데 나는 차를 살 때마다 항상 오래 탈 생각으로 산다.
문제는 오래 탄 적이 별로 없다는 거다.
이쯤 되면 차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생각해보면 차를 꽤 자주 바꿨다.
스파크, 벨로스터, 벨로스터 N, 아이오닉6, 머스탱, 그리고 지금 타는 미니쿠퍼 JCW 컨버터블까지.
신기한 건 아직 자동차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다.
차가 검사받을 나이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보내버렸다.
“이번 차는 오래 탈 거야.”
이 말, 이제 내가 해도 잘 안 믿긴다.
그나마 지금 미니쿠퍼는 자동차 검사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내 차도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1. 전기차를 싫어해서 판 건 아니었다
아이오닉6는 꽤 마음에 들었던 차였다.
전기차 특유의 부드러운 주행감도 좋았고, AWD라 출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유지비도 내연기관보다 부담이 덜했다.
그때도 고성능 전기차에 관심이 있었다.
BMW i4 M50도 타봤고, 아이오닉5 N도 궁금했다.
전기차가 재미없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전기차 화재 이슈가 크게 터졌다.
주차장마다 전기차를 보는 시선이 예민해졌고, 나도 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차가 필요해서 샀는데, 어딜 가든 눈치가 보이는 느낌이 싫었다.
내 돈 주고 산 차인데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나 싶었다.
결국 아이오닉6는 오래 타지 못하고 정리했다.
차가 싫어서 판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는데, 그 시기의 분위기와 내 불안함이 더 컸다.
2. 그런데 다시 전기차가 눈에 들어왔다
전기차를 한 번 정리했으면 마음이 식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최근에 테슬라 모델3를 시승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델Y랑 모델3를 잠깐 고민했다.
근데 나는 SUV가 취향이 아니라는 걸 이미 한 번 깨달았다.
좋은 차인 건 알겠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역시 낮고, 빠르고, 운전 재미가 있는 차 쪽에 더 끌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델3로 마음이 갔다.
그리고 문제의 단어가 붙는다.
Performance.
차쟁이에게 이 단어는 위험하다.
그냥 모델3도 아니고 퍼포먼스라니.
이름부터 이미 내 지갑을 쳐다보고 있다.
3. 지금 차도 좋은데, 너무 작다
지금 타는 미니쿠퍼 JCW 컨버터블도 좋은 차다.
작고 재밌고, 컨버터블 감성도 있다.
운전 재미만 보면 만족스러운 차다.
근데 작다.
그냥 작은 게 아니라 컨버터블이라 더 작다.
트렁크에 캐리어 하나 넣으면 거의 끝이다.
트렁크라기보단 작은 비밀 수납함에 가깝다.
가끔 사람을 태워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살짝 미안해진다.
2열은 사람용인지 짐용인지 아직도 정체성이 애매하다.
물론 미니가 싫어진 건 아니다.
좋은 차다.
근데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편하고, 그러면서도 빠른 차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4. 기름값도 슬슬 무섭다
예전에는 전기차가 무서웠다.
지금은 기름값이 더 무섭다.
특히 고급유를 넣는 입장에서는 주유소에 갈 때마다 마음이 묘하다.
계기판에 주유등이 뜨면 내 마음에도 경고등이 뜬다.
물론 유지비 아끼려고 새 차를 산다는 말은 위험하다.
차를 여러 번 사본 사람으로서 안다.
새 차를 사는 순간, 유지비 절약 논리는 이미 반쯤 무너진다.
그러니까 이건 기름값만의 문제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새 차가 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유지비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만 사실 새 차가 갖고 싶은 마음도 있다.
5. 모델3 퍼포먼스가 위험한 이유
테슬라 모델3 퍼포먼스가 위험한 이유는 애매하게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차면 마음이 편하다.
포르쉐 타이칸이나 앞으로 나올 고성능 전기차들을 보면 멋있긴 한데, 가격표를 보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진다.
꿈은 꿈답게 멀리 있어준다.
근데 모델3 퍼포먼스는 다르다.
비싸다.
근데 아예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지점이 제일 위험하다.
고성능 전기차 중에서는 비교적 현실적인 선택지처럼 느껴진다.
빠르고, 유지비도 기대되고, 테슬라 특유의 시스템도 궁금하다.
개발자라 그런지 테슬라는 자동차이면서도 커다란 전자제품처럼 느껴진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앱 연동, 각종 세팅, 서드파티 용품.
이런 게 다 재미있어 보인다.
차도 좋아하고 전자제품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위험한 조합이다.
거의 함정카드다.
6. 이번엔 무리해서 사고 싶지 않다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사고 싶다.
이 정도로 길게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이 갔다는 뜻이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견적부터 넣었을지도 모른다.
할부 계산하고, 유지비 계산하고, 어떻게든 되는 이유를 찾았을 거다.
차쟁이는 사고 싶은 차가 생기면 논문급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근데 이번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고 싶다.
지금 타는 차를 유지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것도 안다.
출퇴근도 짧아졌고, 차를 꼭 매일 많이 써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
이건 필요보다 욕망에 가깝다.
그 욕망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예전처럼 바로 지갑으로 연결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엔 무리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 때 사고 싶다.”
그래서 결국 또 부업 이야기로 돌아온다.
논리적으로 이 차를 사도 된다고 말하려면, 내가 추가 수익을 만들어야 한다.
말로만 사고 싶다고 외치는 건 쉽다.
진짜 어려운 건 그 차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
나의 현실 드림카.
테슬라 모델3 퍼포먼스.
언젠가는 무리해서가 아니라, 웃으면서 계약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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